신학적 상상력으로 기독교 경전 읽기
창조의 아름다움 : 창조의 주어(主語)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바로 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류사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1절은 그것에 대한 선명한 해답을 제시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만이 창조의 주어가 되신다. 이 말이 갖는 영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첫째로, 하나님이 창조의 주어가 되신다는 말은 세계 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만이 모든 세계 내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존재 그 자체(Being itself)가 되신다. 하나님, 당신은 과연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출3:14). 하나님은 누구에 의해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창조의 주어가 되신다. 우리네 인생을 비롯한 세계 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가 없이는 존재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로 인해 이처럼 존재하게 된 존재를 우리는 피조물(creatures)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불리우는 칼 바르트(Karl Barth)는 그의 유명한 책 『로마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정의하였다. “Who is God?"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God is God)”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이 한 마디 정의가 기독교 신학의 새 장을 열어놓았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질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 보여준 위대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모르고 형이상학의 좁은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논해왔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선언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마치 핵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둘째로, 하나님이 창조의 주어가 되신다는 말은 세계 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로 인하여 힘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가 하나님에게로부터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한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5,16).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주관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창조의 주어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생명’과 ‘복’을 허락하여 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의 오랜 표어 중 하나는 이것이다. “우리는 돌보고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인간이 인간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가?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생명의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조치(treatment)를 취할 뿐이다. 치유의 능력(healing power)는 오직 창조의 주어되시는 하나님께로만 온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의미의 치유자(Healer)가 되신다. 출애굽 기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한다. “. .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6).
셋째로, 하나님이 창조의 주어가 되신다는 말은 세계 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분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과 존재는 창조의 주어되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 밖에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한다. 스스로 인생의 주어가 되고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깊은 공허와 불행으로 고통가운데 신음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밖의 인생은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기 때문이다.
창조의 주어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여 살도록 창조하였다. 빛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살 때 그 빛이 조명되어 우리가 빛 그 자체는 아니지만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 빛에 등을 돌리면 그 순간부터 어두움이 자리하게 되어 어두움의 자식의 삶을 살게 된다. 빛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살 때 비로소 인생의 참 평안과 행복을 맛보게 된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권 1장)
창조의 주어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왜 놀라운 행운이요 왜 엄청난 축복인지 그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놀라운 언약의 말씀을 남겼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 예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며 축복이다. 창조의 주어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그 특권과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는 은총이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