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희망’이다. 삶에 대한 희망도, 직업에 대한 희망도, 건강에 대한 희망도, 꿈에 대한 희망도 점점 사라져 간다.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캄캄한 적막과 고독과 공허가 밀려온다. 그래서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는 그의 『신곡(Divina commedia)』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이런 글을 써 놓았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은 다른 곳이 지옥이 아니다. 삶의 희망이 사라진 곳이 바로 지옥이다. 삶의 희망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릴 때, 그때 우리는 삶의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세계적인 천재 신학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그 희망을 하나님에게서 발견하였다. 몰트만은 1964년 한 권의 책을 출간한다. 바로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이다. 이 한권의 책이 신죽음의 신학적 사조 아래,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전 유럽인들을 희망의 자리로 부활시켰다. 몰트만은 하나님을 ‘희망의 하나님’(롬15:13)으로 이해했다. “희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하나님은 희망의 근거가 되시고, 그분 자신이 희망의 에너지이시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그 희망은 모든 갈등을 넘어서는 희망이다. 구원은 죄와 갈등하고, 생명은 죽음과 갈등하고, 영광은 고난과 갈등하고, 평화는 분열과 갈등한다. 희망은 이러한 갈등 속에서 탄생된다. 즉 십자가를 통한 부활이 바로 몰트만이 말하는 희망이다. 그것이 바로 “희망에 저항하는 희망”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바로 ‘희망을 포기하는 것’ 즉 ‘절망’이다. 바로 ‘희망에 저항하는 죄’가 바로 ‘절망’이다. 믿음의 다른 이름은 바로 ‘희망’이다. 희망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선포한다. “우리가 희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희망이 희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희망을 “깨어 있는 자의 꿈”이라고 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는 결코 희망의 꿈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몰트만은 말한다. "Dum spiro-spero!"(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