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동사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서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하였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시간이다. 이 땅의 삶을 결산할 때이다. 그 결산의 결과에 따라 어떤 이는 ‘영벌’에, 또 어떤 이는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양과 염소의 비유는 바로 이런 우리네 인생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영생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며, 영원한 불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러면 무슨 기준으로 오른편과 왼편을 나누는가? 기준은 ‘사랑’이다. 사랑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오른편에,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왼편에 이르게 된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녀가 된 사람들이 아닌가? 마지막 때에 무슨 또 다른 결산이 있다는 말인가? 맞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다른 문제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의 삶에는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그 변화 중에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의 삶’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요일4:7,8)
믿음의 삶과 사랑의 삶은 결코 둘이 아니다.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게 되면, 우리 모두는 사랑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역시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왜냐하면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일이 곧 주님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사랑은 명사가 아니다. 사랑은 추상명사나 형용사도 아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동사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마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내려오셔서,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갖은 수난을 감당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이처럼 아낌없이 내어 주셨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가장 가까이 있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삶이 있기를 소망한다. 사랑을 나누는 자리에서 하늘의 신령한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