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낳는 열정
신호철씨가 편저한 『양화진 선교사의 삶』이란 책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19세기 오지의 땅,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피를 흘렸다. 선교사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헌신한 기록을 보며 큰 도전을 받는다. 한국 부흥 운동의 선각자로 불리우는 감리교 평신도 선교사 하디(R.A Hardie)는 캐나다의 명문, 토론토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후 아내 켈리(Matilda Kelly)와 함께 평생 의료선교사와 복음 전도자로 한국 땅을 위해서 헌신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두 딸을 양화진에 모두 묻었다. 큰 딸 매리는 출생하자마자 하루를 살고 사망했다. 작은 딸 마가렛도 태어난지 여섯 해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45년을 평신도 의료 선교사로 부흥 운동가로 살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했던 감리교 평신도 교육선교사였던 헐버트(H. B Hulbert)는 자신의 아들 셸던 헐버트를 역시 양화진에 묻었다. 겨우 1년을 살다 갔다. 당시 위생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아이들의 생존율이 높지 않았다. 헐버트는 한국의 YMCA 창설을 주도하였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한 교육 선각자요, 독립운동가였다. 1950년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건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어록을 남겼다. 그들의 복음의 열정과 헌신이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가능케 하였다. 그들의 삶을 움직인 힘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사랑의 열정이었다.
호세아서는 호세아와 그의 아내 고멜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 준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정조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음란한 생활을 하였던 여인이다. 그녀의 음란한 생활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된다. 도저히 고멜은 호세아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는 여인이었다. 당시 부부 사이의 관계를 파기할 수 있는 유일한 죄는 바로 음란의 죄였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러한 사회적 관습을 넘어서 그의 아내 고멜을 사랑한다. 그녀를 용서하고 다시금 아내로 받아들인다. 징계와 심판 대신에 긍휼과 사랑을 베푼다.
호세아서 11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 여기서 ‘나의 긍휼’이란 말은 원어 ‘니훔’에서 온 말이다. 자기 태에서 태어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불붙듯 하였다는 것이다. “불붙듯 하였다”는 말은 원어로 ‘니크메루’란 말이다. 이 말은 ‘열정이 불일 듯 타오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이 불 일 듯 타올랐다는 것이다. 고멜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불 일 듯 타올랐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우리 모두 하나님처럼 사랑의 열정에 불타는 가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열정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enthusiasm”은 라틴어 “엔테오스(en-theos)에서 온 말이다. “하나님 안에서”란 말이다. 진정한 열정은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희망의 역사가 나타나는 모든 곳에는 언제나 열정이 숨쉬고 있는 이유이다. 열정은 희망을 낳는 거위이다. 사랑의 열정으로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