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김의 눈물
앨런 피즈와 바바라 피즈가 쓴 『거짓말하는 남자, 눈물 흘리는 여자』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보면, 눈물의 기능을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 눈물은 세정작용, 윤활작용, 그리고 항균작용을 통해서 눈을 보호한다. 눈물이 메마르면 안구건조증에 걸리게 된다. 둘째, 마음이 아파서 울 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는 진통제인 엔돌핀이 함유되어 있어서 정신적 고통을 줄여준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야 한다. 참으면 병이 된다. 셋째, 눈물은 가장 강력한 정서의 표현이다. 그래서 여자의 눈물은 남자를 움직이고, 남자의 눈물은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해 보면, 이런 눈물과 또 다른 눈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다. 다른 말로 영적 눈물이다. 이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케 씻어 준다.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 준다.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해 준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때로 사람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고, 또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영혼의 보석이 된다.
구약성서 사사기 2장에 보면 눈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김이라는 곳에서 통곡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보김이란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의 축복을 잃어버렸다. 가나안 산지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가나안 산지 사람들에게 쫒겨다니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들의 보김에서의 실패 원인은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삶의 자리를 옮긴 후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타협하며 살게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음성은 무서운 심판의 음성이었다. 이방 민족이 너희에게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이 너희의 올무가 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이었다. 이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내어 통곡하며 운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삿2:4,5).
보김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요, 결단의 눈물이요, 회복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이 처절한 눈물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닫혔던 축복의 문이 새롭게 열리게 되었다. 스펄전 목사는 “마른 눈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눈물이 사라져 버렸다. 영적 안구건조증에 모두 걸려버렸다. 지금이 울 때이다. 지금이 가족을 위해서 울 때이고, 사명을 위해서 울 때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 때이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의 눈물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우리의 거룩한 눈물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지역과 사회를 통해서 흘러넘치게 하자! 그 눈물이 흐르는 곳곳마다 치유와 회복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